공배한잔과 안주반집

바둑이야기

내기로 그림 얻어

kimdong 2015. 5. 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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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로 그림 얻어



  20세기 초엽, 본인방가에 대항했던 방원사(方圓社)이사장 엄기건조(嚴埼健造)8단이 당대의 유명 화가 화정(和亭)의 그림을 탐냈는데 돈을 주고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화정이 바둑광이라는 얘기를 듣고 한 가지 꾀를 내어, 날을 잡아 접는 부채 12자루를 품에 넣고 용화를 찾아 갔다. 엄기는 이미 걸물로 소문나 터라 화정도 반갑게 맞이하였음은 물론이고 초대면 인사가 끝나자마자 소문대로 바둑판을 내놓으며 지도대국을 간청하는 것이었다. 엄기는 속으로 옳거니 하면서도 짐짓 사양하니 몸이 단 화정은 술상을 내오기까지 하면서 거듭 간청한다.

  "그렇다면 좋습니다만, 피차 전문가들로서 살아가는 길이 따로 있는데 공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지면 지도료를 받지 않겠지만 만일 선생이 지면 부채에 그림을 그려 주십시오."

  내기 바둑을 즐기는 화정이 사양할 리가 있겠는가. 5점으로 한판, 먼저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다음 한판은 원숭이 그림을... 이렇게 하여 12자루 부채에 12간지 그림이 완성되었다. 뒤늦게 눈치를 챈 화정이 입에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아뿔사, 속았구나."


양동환의 '묘수와 속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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