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배한잔과 안주반집

사카다의 바둑/예담(藝談)

勝敗에 관련되는 것

kimdong 2020. 7. 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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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제6기 본인방전에서 나는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 八단(당시)에게 도전했다. 출발은 3대1로 리드하여 쾌조였었지만 그 후 2연패하여 결승전이 三重縣(미에켄)의 경승지 현도(賢島:카시코지마)에서 행해졌다. 서반의 유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만 형세를 그르쳐서 지고 말았다.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안타까운 일국이었다.

 

  그로부터 꼭 10년 째에 본인방 타이틀을 쟁취하게 되었는데 바둑의 기술이 10년 전과 비교해서 그리 진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때의 패전을 계기로 해서 다소 인간적으로 성장하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뿐이다.

 

  1963년의 후지사와 히데유키 명인에게의 도전 시합의 제6국도 평생 잊을 수 없는 대국이었다. 그 때에도 2연승한 후, 제3국은 과신해서 지고, 제4국은 거의 결정되었던 바둑을 시간에 쫓기어 역전되었다. 제5국은 연패로 동요하여 平常을 잃어서 졌다.

 

  이런 모양으로 마음이 혼미해 있는 동안은 제6국도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 차리게 되어서, 대국까지의 수일간은 집안에 들어앉아 이렇다할 목적도 없이 秀策, 秀和, 秀甫 등의 기보를 늘어 놓고 있었다. 거기에서 즉효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음의 混迷를 무엇인가를 계기로 하여 각성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대국 前日에 이르러 겨우 얻은 심경은 승패는 한때의 운으로 부득이한 것이지만 그저 내일은 손끝의 재주에 따르지 않는 당당한 바둑을 두어보자는 것이었다. 이 대국에서 나는 그때까지 써오던 3.三의 포석을 처음으로 그만 두었다. 그것은 善惡의 문제 보다도 심기일전하여 대국하고 싶어하는 염원의 발로였던 것이다.

 

  나는 이 바둑을 다행히 이기게 되었는데 3. 三의 포석을 그만 둔 것이 勝敗에 직접 관련한 것이라고는 지금까지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기술면보다도 오히려 본인방전 때와 마찬가지로 심경의 문제였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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