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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서봉수
조훈현은 지금도 최정상에 올라 있지만 김인과 윤기현, 하찬석이 날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일본 유학파다. 바둑은 역시 일본에 가서 제대로 배워와야 일류가 될 수 있다던 그 시절에 서봉수가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일본유학은 커녕 스승도 없이 배운 독학인데, 고추장처럼 매워 유학파들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된장바둑'이라는 별명이 지금까지 따라다닌다.
이창호가 등장하자 서봉수의 기세가 꺼져가는 듯했다. 어찌 된 일인지 이창호소년 앞에서만은 추풍낙엽이었다. 이창호도 순국산이다. 외산에 강하고 국산에 약했던가.
1992년 서봉수는 일어섰다. 제1회 한.중.일 최강 선발전에서 임해봉과 섭위평을 밀어냈다. 그에 앞서 제2회 동양증권배에서 이창호를 따돌리고 우승컵을 안았었다. 이어 응창기배에서는 다케미야, 조치훈을 딛고, 결승에서 오다케를 밀어냄으로써 올림픽 챔프에 올라 포효했다.
발빠름의 조훈현, 끝내기의 이창호에 견주어 서봉수는 난전의 1인자, 최고의 승부사로 평가된다. 그의 시대가 가버린 먼 훗날에도 오늘의 그의 행보(行步)는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양동환의 '묘수와 속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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