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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 담배곽
수영(秀榮)이 궁핍하던 시절의 얘기다.
당시 기사들의 생활수단은 귀족이나 부호들에게 불려가서 받는 교수료가 전부였다. 수영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느 백작의 요청에 가끔 응했는데, 이 백작이 주는 사례금이 언제나 50전. 지금 우리돈으로 쳐서 고작 3만원 정도였다.
5점으로 교습을 받던 백작이 어느날, 「9점을 놓으면 아무리 명인이시더라도 이길 수 없겠지?」하고 떠보는데 수영 명인의 답변이 모호했다.
"글쎄요, 그건 두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죠."
해서 순금 담배곽을 걸고 9점국을 시험했던바 백작이 두 판을 거듭 나가떨어졌다. 희희낙낙 수영이 순금 담배곽을 차지했다.
이튿날, 백작의 비서가 찾아와 반환을 요구했다.
"그 물건은 내기에서 결정된 것인데 되돌려달라니 백작의 지시인가요?"
"점잖은 백작께서 시키시다니요, 하지만 평소의 은혜를 생각할 때 그렇잖습니까?"
수영 명인이 정색하여 말했다.
"이것은 우리들에겐 고가품이지만 백작께선 하찮은 물건인데 직접 지시한 게 아니라면 되돌려 보내는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교수료 50전에 울분을 참던 기사들이 이에 쾌재를 불렀다는 일화다.
양동환의 '묘수와 속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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