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배한잔과 안주반집

사카다의 바둑/예담(藝談)

秒읽기에 관하여

kimdong 2022. 8. 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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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에 관하여

 

  나도 청년시대에는 초읽기에 들어서고도 몇십 수를 둘 수가 있었지만, 최근엔 年令 탓인지 실수가 많아져서 유리한 바둑이라도 이긴다는 자신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시간을 남기면서 두고 있다. 종반에서 시간의 여유가 있는 바둑은 기분으로도 아주 편하여 사실 여간해서 지지 않는다. 시간을 여유 있게 하기 위해서는 중반의 어려운 곳에서 어느 정도 직감에 따라 두는 것도 부득이하다.

 

  한수 한수 최선을 다해 둔다는 것은 이상적이긴 하지만 시간제한이 있는 이상 그래서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초읽기에 쫓기게 되면 그때부터 앞은 오리무중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말하자면 운이 좌우하는 승부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運數相關(운수상관)의 승부는 하고 싶지 않다.

 

  상대가 초읽기에 쫓기는 수도 있다. 그러한 때는 당연히 이쪽이 유리하게 되는 것이지만 상대에 말려들어 이쪽의 탬포도 빨라지기 쉬우므로 스스로 경계하여 자기의 페이스로 두도록 특히 마음을 쓰고 있다. 초읽기에 몰린 상대가 실수하지 않고 도리어 이쪽이 실수하고 만 쓰라린 경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處世訓(처세훈)으로서 그 의미를 받아 드리기 바란다.

 

  지금의 기사 가운데서 초읽기의 바둑이 많은 이는 藤澤朋齊(후지사와호사이), 木谷 實(기타니 미노루) 양九段이 필두라 하겠다. 百手 정도에서 초읽기에 들어간 후부터 거의 초인적인 끈기를 발휘하는 것을 자주 본다. 양쪽 九단이 초읽기에 쫓기는 것은 중반의 어려운 곳에서 자기의 직감과 타협하지 않고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手를 읽고서 이 한수라고 하는 결론에 이르러서 비로소 두는 것이 많은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일단 초읽기에 들어서면 시간도 승패에 포함된다는 따위는 잊어버리고 무아의 경지에 몰입하고 마는 것이리라. 예술지상주의라고나 할까, 이 또한 하나의 있을 법한 방식처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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