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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다의 바둑/예담(藝談)

체력에 진 예선시합

kimdong 2018. 1. 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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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에 진 예선시합


  원생이 되고 나서 1935년 초단이 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당시의 제도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초단이 되기 위해서는 1회의 예선시합에서 최후까지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같은 동료에는 이소가와, 구사까의 현 7단, 이요모도, 스즈끼 고료오 등의 현6단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예선시합에 참가한 것은 1932년 열세살 때였다고 생각한다. 이때 입단한 이가 아마 후지사와 구라노스케씨였다.


  이듬해의 시합에 대해서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당시는 시간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상대방은 보통 수로는 나를 아무래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체력으로 이길 것을 생각했다.

  나는 몸이 약했으므로 시간에 구애 없이 버티고 있으면, 나중엔 내가 지쳐버리리라는 속셈이었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두기 시작하여 밤중까지 가도 아직 열수 정도밖에 나아가질 않는다. 상대방은 천정만 쳐다보고 있더니, 「이쯤에서 잠깐 자고 올까요」하고 쑥 나가 버렸다.

  나도 혼자는 둘 수 없으므로 그날은 휴국(休局)이 되었다. 이틀째도 아침부터 정오까지 걸려 아직 몇수도 나아가지 않는다. 나도 그제서야 상대방의 계획을 겨우 알아차렸으나 시간 제한이 없으므로 별도리가 없다. 

  바둑에서는 지지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상대방은 나보다 손위여서 체력이 훨씬 좋았다. 오후가 되자 피로와 수면 부족으로 점점 사고력이 둔해지고, 사흘째부터는 그저 졸리기만 하여 완전히 멍해 버렸다. 그래도 참고 두었으나 좋은 바둑이 두어질 리가 없다. 나흘째에 마침내 지고 말았다.


  이리하여 내가 그 해에도 예선시합에 떨어진 경위가 기원 간부의 귀에 들어가, 그 이듬해 즉 3년째의 예선시합에서는 시계를 써서 시간 제한을 하는 방법이 채용되고, 나도 겨우 대망의 초단이 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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