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배한잔과 안주반집

사카다의 바둑/예담(藝談)

감색상의(紺色上衣)

kimdong 2018. 1. 4. 16:31
728x90

감색상의(紺色上衣)


  나는 매주 금요일에 학교가 파한 후 마스부찌 선생 댁으로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는 당시부터 아마추어로서는 뛰어나게 강한 야스나가 하지메(安永一)씨가 오고, 또 그 밖에도 강한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대국 상대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선생은 내가 둔 바둑을 비평해 주시고, 또 묘수풀이도 만들어 주셨다.


  마스부찌 선생한테 다니기 시작한지 반년쯤 후, 나는 아까사까 다메이께(赤坂溜池)의 일본기원에 설치된 소년연구회에 들어갔다. 즉 기원원생이 된 것이다. 마스부찌 선생이 추천한 것은 물론이다. 당시 원생들은 감색의상에 하까마(일본 남자들이 입는 치마 비슷한 하의)를 입고 있었으므로 흔히 <감색상의조>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매주 토요일에 있는 연구회에는 이런 복장으로 죽 늘어앉아서 바둑을 두었다. 사범은 나까가와 가메사부로(中川龜三郞), 이와사 아부미(岩佐銈)의 두 스승이 맡았었는데, 혼인보 슈샤이(本因坊秀哉)명인도 거의 빠짐없이 출석하여 두어 주셨다. 이 名實 共히 바둑계의 일인자가 원생의 지도를 자진해서 맡은 심경은 헤아릴 바 없으나,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마운 선생이었다.


  내 모교는 大森제일소학교였는데 처음엔 성적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원생이 된 무렵부터 바둑에의 열중과 반비례하여 학교 성적이 떨어졌다. 내가 바둑이 센 이상한 놈이라는 것이 어느틈엔가 선생의 귀에도 들린 모양이다. 하루는 바둑을 좋아하는 선생이 흑백의 동그라미가 가득히 그려진 그래프 용지를 보이고 「다음의 한수는?」하고 물었다. 내가 잠깐 들여다 보고 「여기가 제일 좋은 곳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선생은 몹시 감탄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풍문에 의하면 다까가와(高川) 9단 같은 분은 학교에서도 수재였던 모양이니까, 바둑과 학교공부와의 관계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내 경우는 학교 공부가 바둑에 져 버린 것같다.


'사카다의 바둑 > 예담(藝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씁쓰름한 에피소드  (0) 2018.02.11
체력에 진 예선시합  (0) 2018.01.26
훌륭한 라이벌  (0) 2018.01.17
천재교육법  (0) 2018.01.08
바둑이 싹틀 무렵  (0) 2018.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