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배한잔과 안주반집

바둑이야기

사활묘기(死活妙機)

kimdong 2015. 6. 28. 23:26
728x90

사활묘기(死活妙機)



  본인방 수재(秀哉)의 사활문제집인 사활묘기는 1910년에 간행된 작품으로 비교적 최근세의 것임에도 어찌된 일인지 고전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지극히 난해한 문제가 많다. 모두 120문제가 수록되어 있는데, 어떤 것은 20수나 30수가 소요되고 바둑판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43수에 걸친 대형도 있다.

  수재(1874~1940)는 20세기 초부터 오청원과 목곡실(木谷實:기타니)이 크게 떠오르기 이전까지 30여 년간에 걸친 세월을 불퇴전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다. 21대 본인방인 그는 시대의 변화에 순응, 세습제 본인방을 타파하고 타이틀로 공개함으로써 오늘날의 본인방전으로 발전하는데에 공헌했다.

  5척 단신에 몸무게 40킬로그램 남짓한 왜소한 체구였는데도 바둑판을 마주하고 대좌하면 반석과 같은 중압감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양동환의 '묘수와 속수'중에서


* 본인방 수재(本因坊 秀哉)


  본명은 전촌보수(田村保壽)로 1874년생이다.

  1884년 방원사(方圓社)의 숙생(연구생)으로 들어갔다가 그후 한동안 바둑계를 떠났었다.

  다시 바둑계에 돌아와 본인방 수영(秀榮)의 문하로 들어가(김옥균이 전촌을 수영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1892년 4단을 인허받고 이후 순조롭게 승단했다.

  먼저 라이벌인 석정천치(石井天治)를 10번기로 철저하게 눌러 제1인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한 한편, 수영이 천하를 호령하며 여러 강호들을 선2(先二)의 치수로 몰아치는 와중에서, 오직 전촌보수만이 정선의 치수를 유지했다.

  그러나 안금준일(雁金準一)이 혜성처럼 나타나고, 수영이 죽자 후계자 문제가 말썽을 빚었다. 실력은 전촌보수가 약간 나은 편이데, 수영은 안금에게 본인방을 넘기려고 했기 때문에 본인방가는 전촌파와 안금파로 갈려 크게 옥신각신하게 되었다. 결국 수영의 아우 수원(秀元)이 다시 20세 본인방이 되고, 1년 후 전촌에게 본인방을 인계하였다.

  1908년 21세 본인방이 된 전촌은 이름을 수재(秀哉)로 고쳐 8단에 올랐고, 1914년 명인으로 추대되었다.

  동경 대지진을 계기로, 재계의 거물 대창희칠랑(大倉喜七郞)의 원조로써 바둑계가 대동 단결, 일본 기원이 그때 창립되었다.

  수재 명인이 위대했던 것은 새로운 시대의 명인이라는 사실을 의식했다는 점이다. 일본 기원을 탈퇴한 안준금일(별도의 기원 경운사를 설립)을 원사 대항전으로 격파하고, 다시 신진 세력인 오청원, 목곡실과 시합을 벌였다. 그리고 본인방을 한 가원(家元)의 전유물로 하지 않고 선수권제로 내놓은 점이다. 1940년 66세의 생애를 마쳤다.

'바둑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형(方形) 바둑판과 원형(圓形) 바둑돌  (0) 2015.07.12
바둑 10결의 저자  (0) 2015.07.03
방원신법(方圓新法)과 위기신법(圍棋新法)  (0) 2015.06.24
위기묘전(圍棋妙傳)  (0) 2015.06.18
현람(玄覽)  (0) 201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