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싹틀 무렵
바둑이 싹틀 무렵
내가 바둑을 배운 것은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얼마 후, 1920년대의 끝 무렵이었다. 집은 도쿄 서쪽 교외에 있는 오오모리(大森)에 있었다. 부친은 굉장히 바둑을 좋아했으나 그다지 세지는 않았으며 또 혈연(血緣)에도 센 사람은 없었다. 말하자면 <바둑의 흐름>이 있는 가계는 아니었다.
그 무렵 부친은 직장을 그만두고 한가했으므로 이웃 어른들이 매일 같이 집에 모여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나는 부친의 무릎에 기대어 바둑을 보고 있는 사이에 마치 해면(海綿)이 물을 빨아들이듯 어느 틈엔가 바둑 手를 익히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손님들과 바둑을 두게 되고, 부친의 뒤를 따라 기원에도 드나들게 되었다.
기원에는 당시 아마추어로서는 상당히 센 사범이 있어, 내게 연습을 시켜 주고, 또 정석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바둑의 재미를 알아 감에 따라 하루하루 手가 세어졌다. 부친은 그것이 자랑거리여서 내게 자주 현상(懸賞)바둑(내기 바둑)을 두게 했는데, 나는 어린 마음에도 부친에게 손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둔 결과 차츰 솜씨가 늘어갔다.
부친은 내가 바둑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수업시켜 보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1928년 막 국민학교 3학년이 된 어느 날, 나를 <시나가와(品川)>에 살고 계시던 마쓰부시 다쓰코 선생한테로 데리고 갔다. 선생은 당시 三단으로서, 댁은 <시나가와>에서 기름집을 하고 있었다. 점포 안에는 도장이 있어 나는 거기서 일곱점을 놓고 선생과 대국했다. 난생 처음으로 전문가와 대국을 갖게 된 셈이지만, 나도 아마추어 初단 가량 실력은 있었으므로 속으로는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두어 나감에 따라 강해야 할 내 석벽(石壁)에 백석이 마술처럼 얽혀 왔다. 어느 틈엔가 형세는 생각치도 않은 판국이 되어 멋지게 지고 말았다. 나는 억울하다는 생각보다도 세상에는 무척 센 사람도 있구나 하는 이상한 기분으로 꽉 차 있었다.